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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카테고리
스크롤의 압박으로 인해.
05시 52분 하염없이 비내리던 어제 하루, 내 몸은 아파, 하였다.오늘도. 이런 때에는 뇌내마약이라도 마음껏 발산해주었으면. 촉매가 될 만한 일들은 모두 부재 중 메시지만을 남겼다. 빌어먹을. 몸이 아파, 하니 마음까지 아파, 해서 습한 공기가 보온되는 와중에는 차라리 깨어있고 싶지가 않다. 내 채널은 이미 폐쇄된 상태이지만, 불쾌지수 높은 이런저런 전파들이 강제로 수신되어버린다. 악성 호르몬으로 변화한 그것들은 혈관 곳곳에 틈입하여 내 심장에 독毒을 축적하고 있다. 두근, 하고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비로 인해 땅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족적에 독액이, 넘쳐날 정도로 고여든다. 저 땅에는 풀도 자라지 않겠지. 창 밖 먹구름 낀 새벽은 진창처럼 질퍽거리는 어제의 재래. 이런 날은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의 차이점이랄 것은 어느 때가 더 어두운가 따위의 음영의 차이 뿐. 다 같이 시체같은 몰골들을 하고서는 누가 하루 더 썩었고 누구에게 더 구더기가 많이 피었나, 하는 따위의 하잘 것 없는 논쟁. 나는 다만 활을 하나 집어들고 저 뒤에 가린 무신경한 태양을 향해 관념을 시위에 얹어 쏘아버리고 싶다. 그러면 해가 다시 서쪽에 떨어지고 찾아오던 낮은 도로 밤이 될 테지. 그 속에 드러누워 모든 것을 잊고 몽상을 획득하겠다. 다른 한 편으로, 이럴 때는 발작같은 조증이 필요하기도 하다. 망각을 유발하는,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난 시체라서, 웃을수도 없다. 그런데 무엇으로 쭈글쭈글 말라붙은 감정의 피부를 재단해야 하지? 내 손에서 절겅거리는 것은 녹이 잔뜩 슬어버린 가위 한 자루인데 그것은 나를 누르느라 바쁘다. 엿이나 바꿔 먹으려고 했지만 몽마夢魔가 오지도 않는다. 깜빡하고 있었다. 그 부류의 직업은 예전에 멸종했다는 것을. 아이들조차 아이답지 않은 꿈을 꾸는 이 세상에서는. 빌어먹을. 15시 36분 잠을 자는 동안에도, 아픈 몸은 날 떠나지 않았다. 수시로 날 쿡쿡 찌르며 몽롱한 꿈의 도처에 현실의 풍경을 인화하고, 그것을 찢고 또 찢어 뿌리고 뿌리고.... 전혀 달갑지 않은 친절이다.이것은. 결국 눈을 떠 보니 오후 1시. 바깥은 여전히 잿빛 얼굴을 한 채로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붕- 붕-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것은 허무와 무기력.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꼬르륵- 아침부터 아무 것도 담지 못한 위장은 허기를 호소하였지만 정작 나 자신은 식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食事? 食死! 만약 죽음을 먹어 生을 배출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럴 테지만. 조리된 음식은 이미 죽어있는 것이고 이어서 배출된 것은 生의 근원과 다름이 아니다, 라는 말은 내게 의미가 없다. 내가 얘기한 것은 보다 직접적인 의미를 갖는다. TV 창 너머로 의미를 가장한 무의미들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소리에는 잡음이 계시처럼 뒤섞여 고막 위에 개미 행렬을 엮고 있다. 마치 버려진 사탕 위에 꼬여든 그것들처럼. 그들이 두르고 있는 겉옷을 벗겨내면 무목적한 망각만이 존재할 텐데. 그 겉옷조차 한 번 털어보면 먼지가 잔뜩 묻어서 다른 색채를 띄고 있던 것에 불과하다. 군체를 이루어 눈을 속이던 먼지는 이제, 모두 낱개가 되어 흩어져서 다시금 공기 속에, 바닥 틈새에 자신의 무의미를 각각 숨긴다. 언젠가 다시 모여 눈속임 장난질이나 하겠지. 내 펜은 비틀거리고 있어서 다시 의미를 그려내지 못할 것만 같다. 과거 속으로 아픔을 흘려보낼 수 있다면, 혹시 모르지. 난 과거를 묻어버리는 따위의 행동에 이미 익숙하니까. 하지만,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서툴러서 몇 번 넘어질 테데. 21시 32분 밤이 찾아오자 공간의 색채는 검게 변했는데, 손가락을 대보니 회색이 진하게 묻어난다. 바람은 멎어있어 선풍기가 대역을 맡았고 종일토록 권태롭던 시간의 점진은 아무런 감흥도 선사하지 못하는 지금 이 시간을 더욱 명징케 하였다. 내 시계는 구입 후, 몇 번인가 죽었다. 그 때마다 초기화되어버린 시간을 지금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죽음을 되살린다고 거짓말하는 것과 같았다. 차라리 전지를 바꾸는 것이 낫겠지만 귀찮다. 시계의 죽음은 미약한 꿈틀거림으로 초분시일월을 이어나가고 있어서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이 시계는 그래서인지 밤에 야광버튼을 눌러도 깨어나지 못한다. 年까지 내포할 여력은 흔적조차 없겠지. 이제 TV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죽음을 멋대로 공유하려고 함으로써, 감정의 충족을 만끽하고자 하는 거짓 인간들이 한바탕 어우러져 춤을 춘다. 카메라 렌즈가 그들을 비출 때, 수백만의 시선을 착각하고 희열이라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표정은, 진심이 아닌 한 때의 가식. 이용하려 들지마라, 죽음을. 자신들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더욱 참혹한 일들에 대해, 혹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외면만을 떠넘기는 위선자들. 책임이 전국민적으로 넓어지면 안전하게 몸을 드러내는 망할. 화가 난다. 고통으로 인하여 내게 있어 편안한 잠이라는 개념은 잊혀져있는 것이다. 언젠가 말했듯이 고통은 익숙해져서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저 같은 아픔 속에서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익숙함일 뿐. 아파, 한다. 몸도, 마음도. 200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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